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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9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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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사 댓글 0건 조회 501회 작성일 23-03-0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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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을(나의 나다나엘은 누구?)(요한복음 강해요약9)

요한복음 143-52

 

어떤 일을 경험한 사람은 같은 일을 경험하는 사람에 대해 공감하며 진심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잘 아는 사람이 그 사람에 대해 잘 소개해 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진심으로 소개할 수 있습니다.

 

유대에 계시던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로 가는 길에 빌립을 만납니다(43). 우연히 만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어쩌다 일어난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삶은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신 분이시고 그분께는 실수도, 우연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와 그분의 손 안에 존재합니다. 우리가 한 교회로 모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이고 선물인 것입니다(11:29).

 

예수님께서는 우연처럼 만난 빌립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43).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같이 벳새다 출신의 사람이었습니다(44). 벳새다 출신이라는 말은 아주 시골 촌뜨기라는 뜻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중요한 일을 맡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출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시고 주님의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께서 메시아이심을 확인하고 바로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갑니다(45,46). 빌립은 먼저 예수님을 만나 그분께서 그리스도이시다는 것을 확인하고 확신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뵙게 되니 완전히 다 알지 못했지만 그분께서 메시아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지식이 많든 적든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그분을 그리스도, 구세주로 믿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은 많은 지식을 가질 만한 배경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침례자 요한을 찾아 예루살렘에서 온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더 적합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벳세다라는 시골 출신인 그들을 자신의 제자로 친히 부르셨습니다.

 

빌립은 친구 나다나엘을 이해시킬 수 없었습니다. 자신은 그분께서 메시아라는 것을 확신했지만 그분은 요셉의 아들 나사렛 출신의 예수님이라는 한가지 걸리는 사실이 있습니다. 빌립은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거짓말하거나 진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친구 빌립과 달리 나다나엘은 모세의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그분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에 나다나엘은 의심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근거한 지극히 타당한 의심입니다. 오히려 자기가 알고 믿는 성경 지식과 반대되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잘못된 일일 것입니다. 성경을 주목하는 유대인이라면 메시아는 다윗의 도시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5:2). 예수님께서는 나사렛 출신인 것 같지만 실제 그분은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도시에서 태어나신 분이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2:11). 올바른 믿음은 아무 지식에 근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근거 위에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논리나 지식만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하는 통로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만 내가 믿는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이끄는 역할만 할 뿐입니다. 그 역할은 결국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데 까지입니다.

몇일 전 침례자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안드레도 친형제 베드로를, 그리고 빌립도 나다나엘을 연결하는 그 역할을 했습니다. 친구에게 내가 이분을 메시아로 믿고 있는데 한번 와서 확인해 보라고 그렇게 예수님을 소개한 것입니다. 모두 알고 있는 정도는 달랐지만 예수님을 소개하고 연결했습니다.

진리는 무한한 것이어서 어떤 인간의 언어로도 다 담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말을 넘어 우리의 존재와 모습이 진리를 담는 진실한 통로일 것입니다(고후2:15).

 

예수님께서는 의심을 가진 나다나엘을 보시면 말씀하십니다. 너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고,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구나.’(47)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 앞에 간사함이 없이 순종하는 백성들에게 붙여주시는 하나님의 백성의 이름입니다. 베드로를 한 눈에 알아보셨던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도 한 눈에 알아보십니다. 사람은 겉모습을 먼저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분이십니다(삼상16:7).

나다나엘은 자신의 중심을 아시는 예수님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예수님, 어떻게 제 마음을 아셨는지요?’(48) 예수님께서는 여기 오기 전에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봤다라고 말씀하십니다(48). ‘무화과나무 아래는 주로 랍비들이 율법을 연구하는 자리였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나다나엘이 어디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 말씀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졌는지, 그리고 하나님께 진심인 마음의 중심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향해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스승님은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49). 한마디로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침례자 요한의 고백과도 일치하고 안드레, 빌립의 고백과도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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